2022. 02. 06 (일) 일기: 음악 방주 짓기

나는 쓸데없는 생각과 말이 많고 그 중에는 반복적인 것도 참 많은데, 주변인들을 괴롭히기 위해 몇년동안 반복적으로 주절거린 쓸데없는 질문, '지금을 기점으로 더는 새로운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살기 vs 과거의 노래를 더는 듣지 못한 채 새 노래만 들으며 살기' 가 나의 디스토피아적 미래관과 결혼해서 자식새끼를 낳아버렸다. 갑자기 지구멸망에 대비하여 음악방주를 짓게된 것이다. 얼마 전 돈룩업을 보다 머릿속에서 탄생한 이상한 생각이다.
물론 지하 벙커가 딸린 집을 짓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싸라기 서울에서는 거실 절반을 마련할 때 버얼써 멸망각이 아니겠는가. 그때까지 캥거루 신세를 유지하기로 하고, 보다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스트리밍이 사라지고, 인터넷도 상위1%만 쓸 수 있고, 가수들은 목숨을 부지하느라 신곡 발표를 포기한 시대가 오더라도 여전히 내 귀는 심심할것이다. 좋은 음악은 혹독한 현실을 외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하여 방주에 탑승시킬 음악을 선정하느라 고민이 깊은 주말이었다. 노아는 전 생태계 복원을 고려해야 했겠지만, 나야 듣지도 않는 트로트나 재즈 따위 뭐 지구에서 없어지든지. 다만 가벼운 애정이 스치듯 깃든 음악들을 방주에 탑승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괴롭다.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려 좋아요를 누른 유행가들, 질리도록 듣다가 플레이리스트에서 퇴출시켰지만 우연히 만나면 반가운 음악들, 매일 듣는 건 쌉오버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간절한 그 노래...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시한부 청각이라도 갖게된 양 이 음악 저 음악 헤집고 다니다가, 30초 만에 다른 음악을 틀어보고 있는 것이다.
고민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탑승시킨 음악들이 있긴하다. travis의 the man who와 최근 하루종일 듣는 the weeknd의 dawn fm을 넣어뒀다. feist의 let it die도 살려뒀다. 다 약간 깨고싶지 않은 꿈에 살고 있는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앨범이라 넣었다. 가장 큰 공은 15년전 싸이월드bgm writing to reach you와, 최근 가장 많이 재생한 음악 1위 out of time에게 돌린다. 변변찮은 화학덩어리 미래식량을 목구멍에 쑤셔넣으며 유해한 대기를 피해 숨 쉬고 있을 때 꼭 이 음악들을 듣고 싶다. 이 음악들이 멸망전까지 나의 변덕을 이겨내어 방주에서 퇴출당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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